1. 영화 ‘어느 가족’ 줄거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 2018)*은 일본 사회의 빈곤과 가족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일본 영화가 다루는 가족 서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영화는 도쿄 변두리에서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현대 일본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가족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어느 가족의 줄거리, 일본 사회적 배경,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영화는 도쿄의 작은 허름한 집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 오사무(릴리 프랭키): 가장 역할을 하는 인물로, 공사장에서 일하지만 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한다.
- 노부요(안도 벚꽃): 오사무의 아내로, 세탁공장에서 일하며 남편과 함께 도둑질을 한다.
- 신야(죠 카이리): 오사무와 함께 도둑질을 배우는 소년.
- 아키(마츠오카 마유): 젊은 여성으로, 가족과 함께 살면서 유흥업에 종사한다.
- 하츠에(기키 기린): 가족의 할머니 역할을 하며 연금으로 생활을 돕는다.
- 유리(사사키 미유): 학대로 인해 집에서 도망쳐 이 가족에게 받아들여지는 소녀.
오사무와 신야는 도둑질을 하던 중, 한겨울에 발코니에서 떨고 있는 어린 소녀 유리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유리를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아이가 원래 있던 집에서 학대를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유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할머니 하츠에 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가족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경찰에 의해 가족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들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2. 영화 속 일본 사회의 현실
1) 빈곤 문제 – 가난이 만들어낸 또 다른 가족 형태
영화는 일본 사회의 심각한 빈곤 문제를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오사무 가족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연금과 도둑질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일본은 겉으로는 부유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OECD 국가 중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며, 특히 한부모 가정과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합니다.
영화 속 할머니 하츠에는 연금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노부요와 오사무는 저임금 노동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경제적 불안정성이 어떻게 가족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 ‘보이지 않는 아이들’ – 아동 방임과 학대 문제
유리는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지만, 이웃이나 사회는 그녀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아동 학대 신고율이 낮고, 사회가 이를 방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며, 유리가 ‘진짜 가족’보다 ‘가짜 가족’ 속에서 더 큰 사랑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3) 사회적 고립 –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난 연대
일본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가족 해체와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오사무 가족은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지만,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이는 현대 일본에서 혈연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3. ‘어느 가족’의 연출 기법 분석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큐멘터리적 스타일을 통해 극적인 감정보다는 사실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합니다.
1) 고정된 카메라와 롱테이크 – 일상의 흐름을 담다
영화는 빠른 컷 편집을 지양하고, 대부분의 장면에서 고정된 카메라와 롱테이크를 활용합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마치 가족의 일상을 조용히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 다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그들의 관계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연출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고레에다 감독의 방식입니다.
2) 여백의 미 –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서는 대사보다는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인물들이 직접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조용한 순간과 미묘한 표정을 통해 더 깊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경찰 조사실에서 노부요가 유리에 대한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장면은 대사보다 더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3) 자연광 활용과 현실적인 촬영 기법
영화는 조명을 인위적으로 밝히지 않고, 대부분 자연광을 활용하여 촬영되었습니다. 이는 인물들의 삶을 더 현실감 있게 전달하며, 빈곤한 환경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장면에서는 햇살을 그대로 활용해 마치 평범한 가족처럼 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효과를 줍니다.
4. 영화 속 상징적 장면과 의미
1) 도둑질 장면 – 생존을 위한 선택
영화에서 오사무와 신야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은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니라,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를 도덕적 판단의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사회적 불평등과 생존의 문제로 조명합니다.
오사무가 신야에게 “가게에 있는 물건은 주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 될 때 우리의 것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들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2) 바닷가 장면 – 가족의 행복과 이별의 암시
가족이 함께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혈연으로 묶인 가족이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가족다운 순간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또한 이 가족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후 이야기에서 가족은 해체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3) 유리의 팔에 남은 상처 – 가족의 의미를 묻다
유리는 학대받던 친부모 밑에서 벗어나 오사무 가족과 함께 지내며 비로소 사랑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경찰이 유리를 원래 부모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녀의 팔에 남아 있는 상처가 클로즈업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유리가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를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장치입니다.
4) 마지막 장면 – 신야의 선택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야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 오사무를 보면서도 그를 부르지 않습니다. 이는 신야가 더 이상 오사무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그는 오사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사회적 현실이 이를 허락하지 않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을 함축합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법과 혈연이 가족을 결정하는가, 아니면 함께한 시간이 가족을 만드는가?’
5. ‘어느 가족’이 전하는 메시지
1) 혈연이 가족을 결정하는가?
영화는 혈연과 법적 관계가 가족을 정의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오사무 가족은 서로를 보호하고 사랑하지만, 법적으로는 ‘가짜 가족’으로 규정됩니다. 반면, 유리의 친부모는 법적으로 그녀의 부모지만, 학대를 일삼았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가족을 정의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2)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
영화 속 오사무 가족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계층입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범죄자로만 볼 수 없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들을 단순히 불쌍한 피해자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며,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3) 일본 사회의 가족 해체와 새로운 형태의 연대
현대 일본에서는 핵가족의 해체와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가족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 즉 혈연을 넘어선 연대가 가능할지를 질문합니다.
6. 결론 – ‘가족’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다
어느 가족은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혈연과 법적 관계가 아닌, ‘함께한 시간’과 ‘서로를 위한 선택’이 가족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연출과 여백의 미를 활용해, 관객들이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결국 영화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믿는 것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법과 혈연만으로 가족을 정의할 수 있는가?
영화를 본 뒤, 우리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